Posted on 2010/09/17 11:19
Filed Under 리뷰:Review

   사람들은 하늘에 떠있는 달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나 같은 경우에는 어렸을 적 과학 시간에 배운 데로 달은 지구 주위를 도는 작은 위성이지 뭐.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데, 소설가에게 있어서 달은 인간 내면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는 매개체인가 보다. 1Q84의 두 개의 달장외인간의 사라진 달... 오래전부터 달과 인간은 어떤 관계가 있었을까?

──────────────────────────────────────────────────────
장외인간 1 - 8점
이외수 지음/해냄

문학
2008년 6월 30일
263쪽

──────────────────────────────────────────────────────

   저자인 이외수씨의 독특한 생각을 책 내용에서 읽을 수 있다. 가슴을 따스하게 해주는 드라마틱한 영화보다는 막상 볼 때는 그냥 그랬지만 보고 나서 한동안 잊히지 않는 강한 인상을 남기는 영화와 비슷하달까.

   물질만능주의인 현시대를 풍자하며 인간 기본에 대한 소중함을 재미있게 표현한다. 2권으로 되어 있는 장편소설이지만 이외수 특유의 기발한 유머로 빠르게 읽혀나간다.


"그대가 진실로 행복한 인생을 살고 싶거나 아름다운 인생을 살고 싶다면, 현재 자신이 알고 있는 자신을 철저히 거부하라. 그것들은 모조리 허상이다. 과감하게 허상을 목졸라버리고 그대의 진체가 무엇인지를 탐구하라. 모든 사람이 군자로 태어났으되 스스로 군자가 되기를 거부하며 살고 있으니, 어찌 세상과 인생이 아름답고 행복하기를 바라겠는가."  - 작가 한마디

작가의 한마디를 보며 문특 든 생각. 어렵다...


인상깊은 부분

13쪽:

   열심히 낳은 알이 차례로 깨져서 프라이가 되는 비극. 병아리가 되더라도 어린애들의 장난감으로 팔려가는 비극. 팔려가 온갖 시달림을 받다가 손독이 올라 목숨이 끊어지는 비극. 한평생 아무리 날개짓을 해도 다른 조류들처럼 멀리까지 하늘을 날 수 없다는 비극. 특별한 잘못도 없이 주인에게 모가지가 비틀려야 한다는 비극. 죽어서도 펄펄 끓는 물에 통째로 처박혀야 한다는 비극. ... 만약 셰익스피어가 닭갈비로 유명한 춘천에서 살았다면 틀림없이 자신의 4대 비극 중에 등장하는 그 어떤 인물도 닭의 비극을 따라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29쪽:

   닭갈비집은 대개 자정 무렵에야 문을 닫는다. 문을 닫고 나면 그때부터 나는 토막난 닭들의 비극적 종말을 서정시로 승화시키는 작업에 몰두한다. 하지만 시는 대상에 대한 정서적 간음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런 줄을 알면서도 나는 토막난 닭들에게 정서적 간음의 욕구를 전혀 느끼지 못한 상태로 시를 쓰는 날이 많았다. 그것은 결국 시를 기만하는 행위나 다름이 없었다. 그래서 내 시들은 언제나 발기부전증에 걸려 있었다.
71쪽:
   "저는 달빛 중독자거든요. 매달 보름날 달빛으로 목욕재계를 하지 않으면 매사에 의욕을 잃어버리는 금단현상을 앓아요. 그래서 최소한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구봉산에 올라가 활공을 해요."
   "활공을 하다니요."
   "보름달이 떠오르면 행글라이딩으로 달빛 속을 유영하는 거지요. 구봉산에 활공장이 있어요. 오늘이 보름이잖아요. 그래서 여기오기 전에도 달빛으로 목욕재계를 했어요. 이 달맞이꽃도 활공장 주변에서 꺾은 거예요. 직장을 얻은 기념으로 여기다 꽂아둘게요. 하지만 낮이 되면 꽃잎들이 오그라들어서 보기가 별로 좋지 않을 거예요. 아시다시피 달맞이꽃은 밤에만 피거든요."
121쪽:
   빨간 우체통은 언제나 기력이 없어 보였다. 너무 오래 영양을 공급받지 못해서 선 채로 굶어 죽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소요가 나타나면서 영양을 공급받기 시작했다. 영업을 마치고 전표계산이 끝나면 그녀는 카운터에 앉아서 편지를 썼다. 수취인 주소는 언제나 동일했다.
   수신
   우주국(宇宙國) 은하도(銀河道) 태양군(太陽郡) 지구면(地球面) 월계리(月界里) 호부월선(湖夫月仙) 귀하(貴下)
   발신
   지구에서 소요가.
122쪽:
   한 번도 서울에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이 동대문에 문지방이 있다고 우길 때, 서울 사람들은 동대문에 문지방이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게다가 어떤 놈들은 곁에서 맞장구를 친다. ...
   하지만 문제는 간단하다. 서울로 데리고 가서 동대문을 직접 보여주면 된다. 달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달이 없다고 우기는 사람에게는 달을 직접 보여주면 된다.
204쪽: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낮잠 속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가 멀리서 나를 손짓해 부르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손짓에 빨려 들어가듯 천천히 걸음을 옮겨놓고 있었다.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의암호로 가고 있었다. 의암호는 꾸역꾸역 안개를 토해내고 있었다. 아버지는 털이 뽑힌 생닭 한 마리를 들고 있었다. 잘 보아라. 아버지는 말하면서 생닭의 뱃속에서 샛노란 계란을 한 개씩 꺼내 의암호로 던지기 시작했다. 껍질이 없고 노른자만 있는 계란이었다. 크기가 다양했다. 녹두알 만한 크기도 있었고 골프공만한 크기도 있었다. 아버지가 의암호에 계란을 한 개씩 던질 때마다 커다란 잉어들이 몸을 뒤채면서 몰려들고 있었다. 잉어가 계란도 먹나요. 내가 물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고 안개 속으로 슬그머니 사라져버렸다. 아버지, 라고 부르는 내 목소리를 듣고 나는 잠에서 깨어나고 말았다.
235쪽:
   "다른 장소에서 살해당한 게 아니라는 말씀인가요."
   "물론입니다."
   "그럼 사인은 어떻게 됩니까."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바로 인체자연발화현상이라는 겁니다."
   사복경관들은 이게 무슨 외계인 롯데껌 씹는 소린가 하는 표정으로 검시관의 얼굴만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2010/09/17 11:19 2010/09/17 11:19

Posted on 2009/11/28 14:34
Filed Under 리뷰:Review

1Q84.이치.큐.하치.욘, 두 개의 달이 나란히 떠있는 세계.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빅 브라더와 "1Q84"에 등장하는 리틀 피플은 무슨 연관성이 있을까?
───────────────────────────────────────────────────────
1Q84 1 - 8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문학동네

문학
2009년 8월 25일
656쪽
───────────────────────────────────────────────────────
관심 있게 읽은 첫 일본 소설인 상실의 시대. 책을 통해 알게 된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
그의 책 내용은 다분히 독특하고 다분히 성(性)적이며 다분히 섬세한 묘사가 있다.

세상과 불협화음을 갖는 아오마메, 덴고.
이 둘의 이야기를 따로따로 풀어가다가 등장하는 묘한 느낌의 후카에리.
리틀 피플의 등장으로 점차 둘 사이가 하나로 이어지게 된다.

초반부터 호기심과 궁금증을 자극.
중반부의 이야기 전개로 조금씩 궁금증을 해소.
후반부에서는 다음 편을 기다리게 하는 아련함이 있다.

Q마크를 도드라지게 표현한 "1Q84"의 일본판 표지,
Photo courtesy of 新潮社

인상깊은 부분

22쪽:

    "아, 그리고." 운전기사는 룸미러를 보며 말했다. "한 가지 알아둬야 할 게 있는데, 모든 일이 겉보기와는 다릅니다."
    모든 일이 겉보기와는 다르다. 아오마메는 머릿속에 그 말을 되풀이했다. 그리고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건 무슨 말씀이세요?"
    운전기사는 단어를 신중하게 고르며 말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제부터 평범하지 않은 일을 하려는 거예요. 그렇죠? 보통사람이라면 대낮에 수도고속도로의 비상계단을 내려가는 일은 안 합니다. 특히 여자들은요."
    "그렇겠죠." 아오마메는 대답했다.
    "그래서 그런 평범하지 않은 일을 하고 나면 일상 풍경이, 뭐랄까,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어요. 하지만 겉모습에 속지 않도록 하세요. 현실은 언제나 단 하나뿐입니다."

54쪽:

    덴고에게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그건 즉, 응모작에 손을 대겠다는 겁니까?"
    "음, 그거 말고는 방법이 없지. 유망한 응모작을 편집자의 조언에 따라 고쳐 쓰게 하는 일은 흔히 있어. 드문 일이 아니지. 다만 이번에는 작가 자신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고쳐 쓰는 거지만."
    "다른 누군가?" 그렇게 묻기는 했으나 그 대답을 덴고는 묻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저 확인을 위해 물어봤을 뿐이다.
    "바로 자네가 고쳐 쓰는 거야." 고마쓰는 말했다.

84쪽:

    너에게는 지나치게 편한 죽음이야. 아오마메는 그렇게 생각하며 얼굴을 찌푸렸다. 너무 지나치게 간단해. 나는 5번 아이언을 사용해서 너의 갈비뼈를 두세 대 부러뜨리고 충분히 고통을 준 뒤에 자비로운 죽음을 주었어야 했겠지. 너는 그런 비참한 죽음이 어울리는 쥐새끼 같은 놈이니까. 그게 실제로 네가 네 아내에게 저지른 짓이니까.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내게는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가 없어. 이 자를 신속하게 아무도 모르게, 하지만 확실하게 저쪽 세계로 보내버리는 게 내게 주어진 사명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사명을 완수했다. 이 남자는 조금전까지 분명 살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죽어 있다. 본인도 미처 깨닫지 못한 채로 삶과 죽음을 가르는 문턱을 넘어서버렸다.

113쪽:

    "리틀 피플은 정말로 있어요." 그녀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로 있어?"
    후카에리는 잠시 틈을 두었다. 그리고 말했다.
    "당신이나 나하고 똑같이."
    "나나 너하고 똑같이." 덴고는 반복했다.
    "보려고 마음먹으면 당신에게도 보여요."
240쪽:
    1Q84년. 이 새로운 세계를 그렇게 부르기로 하자, 아오마메는 그렇게 정했다.
    Q는 question mark의 Q다. 의문을 안고 있는 것.
    그녀는 걸으면서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좋든 싫든 나는 지금 이 '1Q84년'에 몸을 두고 있다. 내가 알고 있던 1984년은 이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은 1Q84년이다. 공기가 바뀌고 풍경이 변했다. 나는 이 물음표 딸린 세계의 존재양식에 되도록 빨리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로운 숲에 내던져진 동물과 똑같다. 내 몸을 지키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이 장소의 룰을 한시라도 빨리 이해하고 거기에 맞춰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418쪽:
    하늘에는 달이 두 개 떠 있었다. 작은 달과 큰 달. 그것이 나란히 하늘에 떠 있다. 큰 쪽이 평소에 늘 보던 달이다. 보름달에 가깝고 노랗다. 하지만 그 곁에 또 하나, 다른 달이 있다. 눈에 익지 않은 모양의 달이다. 약간 일그러졌고 색깔도 엷은 이끼가 낀 것처럼 초록빛을 띠고 있다. 그것이 그녀의 시선이 포착한 것이었다.
    아오마메는 실눈을 뜨고 그 두 개의 달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눈을 감고 한참 시간을 둔 다음, 심호흡을 하고 다시 눈을 떠보았다.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와 하나의 달만 떠 있기를 기대하면서. 하지만 상황은 완전히 똑같았다. 빛의 장난도 아니고 시력이 이상해진 것도 아니다. 하늘에는 틀림없이, 잘못 볼리도 없이, 또렷한 두 개의 달이 나란히 떠 있다. 노란색 달과 초록색 달.
558쪽:
    덴고는 침대를 정리하고 체호프의 역작을 책장에 다시 꽂았다. 그러고는 커피를 내리고 토스트를 구웠다. 아침을 먹으며 자신의 가슴속에 뭔가 묵직한 것이 똬리를 틀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까지 한참이나 시간이 걸렸다. 그것은 후카에리의 잠든 얼굴이었다.
    나는 그 아이를 사랑하는 걸까. 아니, 그럴 리 없다, 고 덴고는 자신을 타일렀다. 다만 그녀 안의 무언가가 우연히 내 마음을 물리적으로 뒤흔들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그녀가 입었던 파자마에 이토록 신경이 쓰이는 걸까? 어째서 (깊이 의식하지도 않고서) 손에 들고 그 냄새를 맡고 만 걸까?
627쪽:
    "개가 죽었어." 다마루는 말했다.
    "개라니, 혹시 붕이?"
    "그래. 시금치를 좋아하던 이상한 독일 셰퍼드. 어젯밤에 죽었어."
    아오마메는 그 말에 놀랐다. 개는 아직 다섯 살 아니면 여섯 살이다. 아직 죽을 나이가 아니다. "지난번에 봤을 때는 건강해 보였는데?"
    "병으로 죽은 게 아니야." 다마루는 억양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침에 나가봤더니 산산조각이 나 있었어."
...
    "뭔가 기묘한 일이 일어나고 있군요."
    "틀림없어." 다마루는 말했다. "뭔가 기묘한 일이 일어나고 있어. 그리고 내 느낌이 옳다면 이건 뭔가의 시작에 지나지 않아."
635쪽:
    도로가 편리해도 길랴크 인들은 도로에서 떨어진 숲을 걸어가는 게 더 편해요. 도로를 걸어가려면 걸어가는 것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해요. 걸어가는 것을 다시 배우면 다른 일도 다시 배워야 하고. 나는 길랴크 인처럼은 살 수 없어요. 남자들에게 항상 얻어맞는 것도 싫어. 구더기가 많은 불결한 생활도 싫어요. 하지만 나도 넓은 도로를 걸어가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
    선생님은큰 힘과 깊은 지혜를 갖고 있어요. 하지만 리틀 피플도 거기에 지지 않게 깊은 지혜와 큰 힘을 갖고 있어요. 숲속에 서는 조심하도록. 중요한 것은 숲속에 있고, 숲에는 리틀 피플이 있어요. 리틀 피플에게 해를 입지 않으려면 리틀 피플이 갖지 않은 것을 찾아내야 해요. 그렇게 하면 숲을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어요.
...
    리틀 피플에 대한 글을 써버린 것 때문에 리틀 피플은 화를 내고 있을지도 몰라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2009/11/28 14:34 2009/11/28 14:34

Posted on 2009/10/01 00:25
Filed Under 리뷰:Review

"현 시대의 사회 이슈에 대하여 쉽게 이해하기"

───────────────────────────────────────────────────────
지식 e - 시즌 2 - 8점
EBS 지식채널ⓔ 엮음/북하우스

인문학
2007년 12월 17일
384쪽
───────────────────────────────────────────────────────
단순하게 사는 법을 시작으로 몰랐던 정보를 이해하기 쉽도록 명쾌하게 풀어써서 읽기가 수월하다.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이야기나 한번 이상은 들어본 이야기들을 사진과 간결한 문장으로 어우러져서 부담없이 쉽게 접근할 수 있었지만, 좀 더 새로운 내용을 캐내려다 실패했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든다.

어느 특정 소재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주제에 접근하여 지루하지 않게 다가온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지식"이란 기본적으로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한거라 생각했었는데, 깨달은 것, 이해한 것 모두 지식이라 말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새로움도 배울 수 있었다.

지식 知識 | 명사
1 어떤 대상에 대하여 배우거나 실천을 통하여 알게 된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
2 알고 있는 내용이나 사물.

일반적으로 상식이란 애매하고 부동적()이며, 지식은 명석하고 확정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지식과 상식 사이에 뚜렷한 금을 긋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상식의 순화(純化)에 의한 지식도 있으며, 반대로 과학적인 지식으로서, 그것도 상당히 고도(高度)의 지식이 상식화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출처 : 네이버 사전 / 백과사전

TV 방영작을 책으로 엮어 4권 까지 출시되어 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짬짬히 읽기에 부담이 없다 :)


동화작가 고 권정생 선생의 삶을 그린 "강아지똥 할아버지"의 삽화,

Photo courtesy of 사계절 출판사


인상깊은 부분

01 단순하게 사는 법:

    마을 사람들은 그를 빈둥거리며 삶을 소비하는 실패자로 여겼지만 그는 의식주만을 해결한 후 남은 여름과 겨울을 산책했고 관찰했고 느꼈다 그리고 마침내 경이로운 책 "월든 Walden"(1854)을 썼다.
...
    "사람들이 성공적이라고 칭찬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삶은 단 한 종류뿐이다. 우리는 왜 다른 모든 것들을 희생하면서 고작 한 가지만을 과대평가하는가." - 헨리 데이빗 소로우(1917~1862)

09 유행가:

    "박인희"
    "예?"
    "이 노래 부른 가수다. 촌스럽냐?"
    "아니, 뭐..."
    "아무 느낌도 없고?"
    "..."
    "난 이 노래 들으면서 울었다."
...
    "벌써 끝나버렸는데 이 가수는 자꾸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고 하잖아!"
...
    누구나 유행가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18 사람들:

    2006년 7월 30일
    조용했던 레바논 카나마을에
    폭격이 있었던 새벽
    마을에서 살아남은 이는 8명...
    희생자 60여 명 중 37명은 어린이들
    어린이들...
    "충분히 군사공격에 대한 경고를 내린 뒤였다." - 카나 폭격 직후 이스라엘 군당국
...
    아랍연맹, 프랑스 러시아 등 세계 각국은 이스라엘을 강하게 비난하며 공격중단을 촉구했지만 부시 미 대통령은 "헤즈볼라는 평화의 진전을 가로막는 테러집단"이라며 이스라엘에 대한 적극적 지지입장을 밝혔다. 국제정치 전문가들은 "이스라엘이 헤즈볼라 소탕을 빌미로 레바논 남부를 초토화시킨 후 국제평화유지군의 형태로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 지역을 점령하는 구도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 이스라엘 레바논 분쟁

19 보내지 못한 편지:

    어머니 언젠가 우리 모두 야스쿠니 신사에서 다시 만날 거라고 합니다.
    그 말을 믿어도 될까요? 정말 그럴 수 있을까요?
    저는 얼마 전 가미카제라는 특별무대에 배치받았습니다. 전투기 한 대로 적의 항공모함을 침몰시키는 영광스러운 임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250kg의 폭탄을 싣고 미군의 항공모함으로 수직강하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적의 함대에 명중하는 가미카제는 10%뿐 나머지는 바다에 곧두박질하는 것이지요. 이미 수많은 전우들이 폭탄이 되어 떠나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
    어머니 저는 내일아침 출격합니다. 사람들은 저를 멋진 사나이라 부르며 손을 흔들겠죠. 대일본제국을 위한 천황을 위한 위대한 희생이라며 추켜세우겠죠. 그리고 아마 그들은 제가 죽음 앞에서 "어머니, 야스쿠니 신사에서 다시 만나요."라고 망설임 없이 말할 것이라 믿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냥 어린애처럼 크게 어머니를 부를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 어머니가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27 미니는 어디로:

    전세계의 잔존 오랑우탄은 2만5,000~3만 마리. 생포, 밀거래 과정에서 매일 5~6마리의 오랑우탄이 죽는다. 동물보호단체의 노력으로 다시 풀려난다 해도 정작 미니가 돌아갈 고향은 사라졌다. 빵, 커피크림, 립스틱의 원료로 쓰이는 기름야자(팜유) 때문에 그들은 미니의 고향을 베고 가르고 불태웠다. 미니와 그의 친구들이 살아가야 할 서식지의 90% 이상이 사라졌다.
    미니는 어디로?

    "동물을 보호구역이나 동물원으로 몰아넣게 되면 그들의 미래는 사라질 것이다.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의 서식지를 마련하는 것이다."
    - 팀 플래너리(미래학자)

31 이상한 밴드의 이상한 댄스음악:

    1998년 영국의 대표적인 가요제 <브릿 어워드> 수상식장. 유명해진 노래 덕에 시상식에 초대된 영국밴드 첨바왐바Chumbawamba
    시상식장 한켠 자리값만 5,000달러짜리 VIP석. 영국의 부수상 존 프리스콧의 머리 위로 쏟아진 얼음 양동이
    "이건 배신자의 몫이닷!"
    주동자인 첨바왐바의 드러머 댄버트는 현장에서 체포되고 시상식은 난장판이 된다.

    80년대 말부터 도입된 컨테이너 기술로 노동력 수요가 줄어들자 고용주들의 압력을 받게 된 마가렛 대처 정부는 항만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해주던 '국제항만노동계획안'을 폐지한다. 아침 일찍 대기하다 관리자에게 발탁되어야만 겨우 일을 할 수 있게 된 항만노동자들은 힘겨운 투쟁을 다시 시작했고, 1995년 9월 영국 리버풀 항만에서는 시위 중 출근거부를 이유로 30년 넘게 일한 백발의 항만노동자들 5백여 명이 해고되었다.
    첨바왐바의 노래 <텁섬핑(열변)>은 리버풀 항만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원하기 위한 '민중가요'였으며 부수상 프리스콧은 다름아닌 항만노동자 출신이었다.

33 주도면밀한 희대의 사기꾼:

    "그것은 말로 표현되지 않는 인간의 감정에 대한 탐구였다." - 우디 앨런
    "쇼는 끝났다. 사람들은 더이상 상상하지 않는다." - 채플린 대사 중에서
...
    1947년에 발표한 <살인광 시대Monsieur Verdoux>에서는 '전쟁'이란 명목의 대량살인을 고무찬양하는 자본주의적 제국질서를 거세게 비난하기도 했는데, 당시 미국사회를 뒤흔든 반공주의 열풍(매카시즘) 속에서 공산주의자로 몰려 심한 박해를 받았다. 미국사회의 또 다른 쇼비니즘과 개선 없는 물질만능주의에 환멸을 느낀 채플린은 결국 1952년에 미국을 떠나 스위스에 정착한다.
    1972년, 미국은 뒤늦게 그의 예술적 공로를 인정하고 아카데미 특별상을 수여했지만, 채플린은 여전히 스위스에서 평화로운 말년을 보내다 1977년에 생을 마감했다.
    - 찰리 채플린(1889.4.16~1977)

40 正生:

    "동화가 왜 그렇게 어둡냐고요? 그게 진실이기에 아이들에게 감추는 것만이 대수는 아니지요. 좋은 글은 읽고나면 불편한 느낌이 드는 글입니다."
...
    "하느님께 기도해주세요. 제발 이 세상, 너무도 아름다운 세상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게 해달라고요. 제 예금통장 다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측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주세요.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주십시오. 중동, 아프리카, 그리고 티벳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지요. 기도 많이 해주세요. 안녕히 계십시오."
    - 아동문학가 故권정생(1937.9.10~2007.5.17)


Chumbawamba의 Tubthumping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2009/10/01 00:25 2009/10/01 00:25

Posted on 2009/09/29 00:47
Filed Under 리뷰:Review

"묘한 소녀에 대하여 이야기를 꺼내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놀라울 정도로 재능을 가진 소녀와 그 소녀를 지켜보는 한 중년남성의 이야기."

───────────────────────────────────────────────────────
초콜릿 코스모스 - 8점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북폴리오

문학
2008년 5월 30일
508쪽
───────────────────────────────────────────────────────

연극 오디션을 소재로 소설의 내용 전개가 긴박하게, 마치 영화를 보듯이 빠르게 지나간다.
소설 속 주인공 작가처럼 이 책의 실제 작가는 글을 쓰면서 어떠한 생각을 했을지 궁금...
현실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다소 환상적인 내용으로 읽는 내내 호기심을 자아낸다.



2009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석한 온다 리쿠,
Photo courtesy of 한겨례


인상깊은 부분

8쪽:

    가미야에게는 원고를 쓸 때 독특한 버릇이 있었다.
    자기 집 책상에서는 일을 시작하지 못한다는 버릇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재수생 시절부터 시작된 버릇일지 모른다. 침침한 재즈 다방이나 커피숍에서 공부가 훨씬 잘 되었다. 대학 때는 물론 찻집에서 살다시피 했고, 영업사원 때는 패밀리레스토랑이나 150엔 커피숍의 작은 테이블에서 원고 매수를 채우는 버릇이 붙었다.
    그 때문인지 지난해 부모와 동거할 2세대 주택을 신축하면서 기껏 작은 작업실까지 마련해 놓고도, 그쪽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여전히 역 앞 찻집이나 패밀리레스토랑, 심지어는 옛 동료들의 사무실 구석까지 가서 원고를 쓴다.

61쪽:

    "어?"
    "돌잖아?"
    놀라움의 탄성이 터져나왔다.
    정말 놀이기구가 돌고 있었다. 소녀는 꼭대기에 앉아 있는데, 놀이기구가 서서히 돌기 시작했다.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고, 주위에 아무도 없는데도.
...
    소녀는 여전히 하늘을 보고 있었지만, 두 손은 어느새 등 뒤로 돌아가 있었다. 십중팔구 등 뒤로 돌린 두 손으로 놀이기구의 가장 높은 부분을 잡고 몰래 회전시키고 있는 게 틀림없다.
    이쪽에서는 보이지 않을 것도 계산에 들어 있을 것이다. 멀리서 보기에는 마치 놀이기구가 저절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 것도.
    또다시 소름이 돋았다.

147쪽:

    나에게 그런 꿈꾸는 힘이 있을까. 만약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분수에 맞는 세계를 쓸 능력밖에 없다는 것이 드러난다면. 그러고도 계속 글을 써나갈 수 있을까.
    가미야는 자기가 두려워하던 것이 이 일에 실패하는 게 아니라 그 부분이었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자신의 한계를 통감하게 된다면 그 뒤로 창작을 계속할 자신이 없다.
    무섭다. 무섭지만, 한번 시험해 보고 싶다.
186쪽:
    "상냥하고 품위 있게, 눈에 띄지 않게."
    아스카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아라가키를 보았다.
    "그러면서도 죽음의 천사란 말이죠?"
    "그래."
    아라가키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아스카는 생각에 잠겼다.
    왜 그런지 다쓰미는 그녀가 진지하게 생각에 잠기면 무서워진다. 입단 테스트 때부터 그랬다. 그녀는 승산이 있을 때 생각에 잠긴다는 생각이 든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음미하는 것이다.
201쪽:
    그녀는 "보세요, 당신들이 갈 곳을!"과 "당신들의 참된 목적지를!"로 나눠 말하고, 그러고 나서 그 가면을 쓰고 객석을 돌아보았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다쓰미는 자신이 분석 모드로 전환된 것을 깨달았으나, 지금은 무대를 끝냈다는 흥분보다 그 문제가 더 크게 마음을 차지하고 있었다.
    어제 이 대사는 우리 열 명에게 한 것이었는데, 오늘은 객석을 향해, '관객들'을 향해 한 것이 된다.
    게다가 객석을 향해 돌아선 죽음의 천사에게는 얼굴이 없고, 얼굴이 있어야 할 부분에 '관객들'이 비쳐 있었다. 누구나 자기 인생의 허무함을 본 것 같아 섬뜩했을 게 틀림없다. 연극의 제목이자 테마기도 한 등장인물들의 '목적지'는 관객의 '목적지'로 변모된 것이다.
222쪽:
    그때까지 콘서트에도 가본 적이 없는 아스카는 장내의 웅성거림, 사람들의 기대와 흥분에 우선 놀랐다. 다 함께 꼼짝 않고 앉아 어떤 체험을 공유한다는 게 신선했다. 특별하고 화려한 공기. 이런 세계가 있었다니. 아스카는 전단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눈 높은 관객들의 표정과 무대의 막을 두리번두리번 살폈다.
    그리고 막이 올랐다.
    어둠 속에 환희 밝혀진 빠끔히 열린 공간. 눈앞에 하나의 세계가 있다. 바로 저 앞에 있고 같은 공기를 마시는데도 전혀 다른 세계가.
328쪽:
    "프로들 중에서 오디션 참가를 의뢰할 배우를 고른 사람은 저고, 이 공연 프로듀서이기도 하니까요."
    "네?"
    교코는 놀라 눈앞에 있는 남자를 보았다.
    호리호리하고 나이를 알 수 없는 남자. 노인 같기도 하고, 젊은 사람 같기도 하다. 머리는 희끗희끗하고, 국적을 알 수 없다.
    "...... 세리자와 다이지로 씨이신가요?"
    교코가 낮은 목소리로 묻자 남자는 히죽 웃었다.
    "교코 씨가 어렸을 때 댁에 찾아간 적이 있는데, 많이 컸군요."
449쪽:
    별안간 팔을 붙들려 일으켜 세워진 아스카는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다쓰미는 자기 이름을 외쳐대지, 다들 자기를 돌아보고 있었다.
    아스카는 다쓰미와 객석을 멍하니 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쏘아보는 듯한 시선을 깨닫고 맥없이 돌아보았다.

    아즈마 교코가 자기를 보고 있었다.
426쪽:
    관객은 잔혹하다. 조금 전 실패한 아즈미 아오이 생각은 이미 까맣게 잊어버렸다. 누구나 이제부터 펼쳐질 연기를 생각하며 가슴설렌다.
460쪽:
    그때 아스카가 움찔했다.
    관객이 흠칫 놀란다.
    총성을 신호로 그녀는 교코와 다른 표정을 보였다. 정신이 든 것처럼 동작을 멈춘다.
    "역시 그쳤네."
    교코가 그렇게 중얼거린 순간. 아스카가 뒤로 스윽 물러났다.
    가미야는 흠짓했다.

    '그림자'가 떨어져 나갔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움직임이었다. 그때까지 블랜치 뒤에 바짝 달라붙어 있던 그림자가 분리된 것이다.
    그림자의 반란.
    아스카는 무표정한 얼굴로 교코의 정면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팔짱을 끼고 위압적으로 가로막고 섰다. 갑자기 그림자가 실체가 된 것이다.


관련 사이트


온다리쿠의 또 다른 대표작 : 밤의 피크닉
온다리쿠의 "나비" 엿보기
온다리쿠 더 보기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2009/09/29 00:47 2009/09/29 00:47

Posted on 2009/09/12 16:12
Filed Under 리뷰:Review

"지금과 다른 어린 시절의 어머니 모습이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한 장씩 스쳐 지나간다."

───────────────────────────────────────────────────────
도쿄 타워 - 10점
릴리 프랭키 지음, 양윤옥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

문학
2007년 1월 9일
422쪽
───────────────────────────────────────────────────────

일본문학이 좋다.
흔히들 일본 사람은 겉과 속이 다르다고 하지만, 일본 작가들의 글을 보면 누구보다 더 솔직하다.
국적, 인종에 상관없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 마음은 누구나 똑같지 않을까 :)

프로필 이미지
릴리 프랭키,
Photo courtesy of Daum Blog

나이 서른이 가까워지면서 잊혀간 그 시절, 어렸을 때는 어쩜 그리도 열심히 하셨는지 의아할 정도로 어머니의 강인한 모습이 눈앞에 떠오른다. 초등학교 때 갖고 싶은 물건을 사달라고 떼쓰면 기어코 사주시고, 중고등 학교 때는 남들 다 하는 건 꼭 시켜야 한다며 학원에 과외 이것저것 다 시키고, 군대에 갈 때 그렇게 만류했건만 훈련소까지 따라오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 스르르 하며 하나씩 떠오른다.

소설이든 노래든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좋아하게 된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소설이 아닐까...

도쿄타워 아래에서
Canon EOS 50D | Auto W/B | 1/80sec | F4.5 | 0EV | 50mm | ISO-1000 | 2009:08:11 21:01:31
책을 읽고 그 다음 달 일본여행에서 찾아간 도쿄타워



인상깊은 부분

6쪽: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계속해서 빙글빙글 돌아버리는 우리가 그것을 동경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사람들은 그곳을 향해 나아간다. 태어난 땅에 등을 돌리고, 그것처럼 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도쿄로 나온다.
    이 이야기는 오래전에 그것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상경했었고 결국 떨려나서 고향으로 돌아갔던 내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이곳에 나왔다가 돌아갈 곳을 잃어버린 나, 그리고 단 한 번도 그런 환상을 품은 일이 없는데도 도쿄까지 따라 나왔다가 돌아가지 못한 채 도쿄 중턱에 영면(永眠)한 내 어머니의 조그만 이야기이다.

26쪽:

    그 여고생은 마침 그 장난감을 가지고 있어서 날마다 그걸 함께 불면서 놀았다. 빨대는 완전히 공용이어서 서로 번갈아 불어가며 풍선 크기를 다투었는데, 그런데 말이다, 그 여학생은 대체 어떤 전염병이었을까요...
    어른이 된 뒤에 그 일을 생각할 때마다 여간 마음에 걸리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누군가 "정 궁금하면 알려줄까?"하고 나선다면, 물론, 전혀, 하나도 알고 싶지 않다.

46쪽:

    돌아온 카드 앨범을 손에 들고 지그시 바라보았지만 '그렇게까지 해가면서, 나도 이딴 거, 필요 없고만...'이라고 생각했다.
    그후 '아랫도리 홀딱 건강법' 아버지와 엄니 사이에 부모들 간의 화해 인사도 집행된 모양이었다.
    가난은 비교할 것이 있을 때 비로소 눈에 띈다. 이 동네에서는 생활보호를 받는 집이나 그렇지 않은 집이나 사회적인 지위는 달랐어도 객관적으로는 어느 쪽이 더 여유 있게 사는지 별반 눈에 띄지 않았다. 부자가 없으니 가난뱅이도 존재하지 않았다.

63쪽:

    빙글빙글 헤집고 다니려니 숨까지 막혀왔다.
    초라하게 시들어버린 정원, 그 주변을 빙 둘러싼 복도를 몇 바퀴나 빙글빙글 돌았다. 빙글빙글, 빙글빙글 빙글빙글.
    그 싫은 아저씨에게 어째서 엄니는 그토록 상냥한 걸까. 빙글빙글, 빙글빙글.
    화투를 할 때처럼 어째서 담배를 푹푹 피우지 않는 걸까. 빙글빙글, 빙글빙글.

80쪽:

    "뭐, 됐네. 이런 거면 좋겄지?"
    그러면서 아부지는 완성 3분 전 상태에서 붓을 내려놓더니 "그럼 나는..."이라며 집안으로 들어가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아니, 하자고요, 끝까지. 조금만 더 하면 완성되는데, 싫증이 났나, 갑자기? 약속 시간이 되었나?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제 5분도 안 되어 끝나는 지점까지 왔는데, 왜? 어째서? 뭐야, 아부지, 하다가 말아버리는 그 어중간한 짓?
    어째서 끝까지 만들어 주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그때가 내 모든 추억 중에서 가장 아부지가 아버지다웠던 순간이었던 것만은 틀림이 없다.
    누가 보더라도 우리 두 사람이 부자지간으로 보였을 시간이었다. 그리고 내가 아부지와 보낸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고 가장 흐뭇한 시간이었다.

124쪽:

    "이제 크라운도 영 틀렸지?"
    "애초부터 그렇고만. 백 엔짜리 라이터 회사가 구단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무리한 얘기였어. 거봐, 에가와도 거인 쪽이 오히려 좋았잖여."
    "그려도 야쿠르트는 백 엔도 안 되는디?"
    "야쿠르트는 날마다 먹는 거잖여. 라이터는 한 번 사면 한참 쓰는 거고. 그러니 돈이 벌릴 리가 있냐고."

175쪽:

    그리고 며칠 뒤, 엄니는 마음을 다져먹은 듯 힘찬 목소리로 전화를 해왔다.
    "엄니도 앞으로 일 년만 더 애를 써볼 테니께, 너도 다시 한 번 기합을 넣어서 앞으로 일 년, 졸업 때까지 착실하게 혀봐. 어뗘, 할 수 있겄냐?"
    "아, 응... 할 수 있을 거야..."
    "어쩔 수 없고만. 유급해라."
    결국 4학년 여름이 지난 시점에 아무리 발버둥 쳐도 학점이 부족해서 나는 5학년이 되고 말았다. 죄송하다는 마음에 시달리면서도 일단 게으른 근성이 배어버린 나는 그 반성도 한 순간, 자, 내년 봄까지는 상당히 시간이 남아돌겠구나, 라는 식으로 날마다 파친코에 들락거리는 타락의 나날을 계속했다.

212쪽:

   "수술해?"
   "수술이야 하지. 갑상선하고 성대 쪽에도 조금 생긴 모양이여. 수술은 갑상선 쪽만 하고 성대 쪽은 안 떼어낼 거고만. 그걸 떼어내면 목소리가 안 나올 테니께."
    엄니는 의사와 상의한 끝에 수술을 받는 조건으로, 성대 쪽의 암은 다른 치료방법을 썼으면 좋겠다고 말한 모양이었다.
    성대까지 적출수술을 받으면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된다. 하지만 그쪽을 남겨두면 완치를 위한 수술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엄니는 그래도 고집스럽게 목소리만은 남겨두려고 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간 당연한 일처럼 말하고 웃고 노래해온 사람이 앞으로 평생 목소리 없이 살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예, 어쩔 수 없지요, 하며 순순히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을 것이다.

233쪽:

    다른 누구도 아닌 엄니가 그러고 있었다...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엄니는 여느 때처럼, 일은 잘 되느냐, 몸조심하고 열심히 해라, 라면서 수화기를 내려놓으려고 했다. 나는 무의식중에 다급하게 엄니를 불렀다.
    "엄니!"
    "왜 그랴..."
    "도쿄로 올래?"
    "에?"
    "도쿄에서 나랑 함께 살까?"

269쪽:

    나는 왜 그랬는지, 성인잡지로 얼른 얼굴을 가리고 슬그머니 두 사람의 행방을 눈으로 좇았다.
    아부지가 바구니를 들었고 엄니가 그 곁을 따라가며 과자 진열대로 향하고 있었다. 물건을 손에 들고 뭔가 이야기를 하던 끝에 전병을 바구니에 넣고 페트병 보리차를 사들였다.
    거의 본 적이 없는 부부다운 모습이었다. 아부지와 엄니가 진짜 부부인 것처럼 보이는, 내 기억에 별로 없는 정다운 모습이었다.
    그때의 엄니의 얼굴은 잊어버리려 해도 잊혀지지 않는다.
    암에 걸린 주제에 엄니는 정말 몹시도 즐거워 보였던 것이다.

274쪽:

    거울에 비친 도쿄 타워를 보며 미소 짓는 엄니. 창문 너머로 직접 그것을 바라보는 아부지. 그리고 그 두 사람과 두 개의 도쿄 타워를 함께 바라보는 나.
    웬일인지 우리는 그때 그곳에 함께 있었다. 따로따로 떨어져 살던 세 사람이 마치 도쿄 타워에 끌려들기라도 한 것처럼 그곳에 함께 있었다.

312쪽:

    바닥에 시트를 깔고그 위에 의자를 놓고서 오츠키 씨가 가져온 도구를 차려 놓자 살풍경하던 세면실은 마치 작은 미용실처럼 변했다. 간호사와 다른 환자들이 들여다보고 "와아, 멋진데요?"라며 인사를 건네고 갔다.
    식욕이 없어서 링거 주사를 맞아가며 머리손질을 했지만, 여자의 마음이란 이런 일에 힘과 용기가 나는 것인지 그때 엄니는 얼굴이 환해져서 병 따위는 잊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그 모습을 곁에서 바라보며 몇 장인가 사진을 찍었다. 내 파인더 속에는 건강하던 무렵과 똑같은 표정의 엄니가 남았다.

336쪽:

    자동차로 병원에 달려갔을 때는 면회시간도 진즉에 끝난 시간대였지만, 엄니의 병세가 그쯤 되고 보니 나는 그런건 상관없이 언제라도 병동에 드나들었다. 응급 입구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향해 어두운 복도를 총총걸음으로 엄니의 병실로 향했다.
    병실에 들어서자 엄니의 침대가 있던 자리에 짐도 명찰도 사라지고 없었다.
    뭔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어렸을 때, 낯선 아저씨와 함께 건강랜드에 갔다가 엄니를 잃어버렸을 때처럼 빙글빙글 마음이 쏠려드는 듯한 그 느낌.

410쪽:

어머니란 욕심 없는 것입니다.
내 자식이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내 자식이 큰 부자가 되는 것 보다
하루하루 건강하게 지내주기만을
진심으로 바라고 기원합니다.
아무리 값비싼 선물보다
내 자식의 다정한 말 한 마디에
넘칠 만큼 행복해집니다.
어머니란
실로 욕심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머니를 울리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몹쓸 일입니다.

415쪽:

    도쿄 타워의 창에 펼쳐진 하늘은 파랗고 서서히 지평선을 향하면서 하얗게 녹아들었다. 햇살이 부드럽게 바다와 도시를 비추었다.
    나는 내내 머나먼 저쪽을 바라보았다. 목에 건 조그만 가방에서 얼굴을 내민 엄니도 같은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엄니,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참말 다행이네."


 "東京にもあったんだ(도쿄에도 있었네)"
오다기리 죠 주연의 영화 "도쿄타워" 엔딩 크레딧 삽입곡

가장 좋아하는 일본작가 히가시노 게이고 원작의
영화 "용의자 X의 헌신"과 드라마 "탐정 갈릴레오"에
주연으로 출연한 배우 겸 가수 후쿠야마 마사하루의 곡
후쿠야마 마사하루의 다른 곡 더 보기

more..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2009/09/12 16:12 2009/09/12 16:12

Posted on 2009/03/20 00:34
Filed Under 리뷰:Review

"방황, 어린 시절의 회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간 성장소설"

───────────────────────────────────────────────────────
개밥바라기별 - 8점
황석영 지음/문학동네

문학
2008년 8월 1일
288쪽
───────────────────────────────────────────────────────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 십 대의 나는 어떠한 생각을 하며 하루를 보냈나 곰곰이 생각하였다. 어쩌면 현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젊은 시절은 그저 평범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누구나 저마다  다른 어린 시절이 존재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고민은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또는 다가올 내일이나 항상 생각하게 된다. 오늘도 물론이며...

과거에 대한 추억, 미래에 대한 생각은 잠시 뒤로하고 지금의 나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을 해볼만 하다.
현재보다 중요한 건 없으니까...

조세현의 인물사진 : 소설가 황석영,
Photo courtesy of DongA

인상깊은 부분

41쪽:

    내가 영길이 너나 중길이를 왜 첨부터 어린애 취급했는지 알아? 아주 좋은 것들은 숨기거나 슬쩍 거리를 둬야 하는 거야. 너희는 언제나 시에 코를 박고 있었다구. 별은 보지 않구 별이라구 글씨만 쓰구.

168쪽:

    부둣가 선창의 음식좌판 앞에서 우리는 소주 몇 잔에 산낙지와 홍합, 조개구이로 요기도 했지. 준이와 내가 늘 농담삼아 하는 얘기지만 우리는 어째서 경치 좋은 호숫가나 모래사장이 근사한 해수욕장에 가면 아무 생각도 안 나고, 지저분하고 시끌버적한 부둣가나 뱃사람들의 선술집에 가야 정서가 발동되는지 모를 일이야. 준이는 술 먹다 심심해지면 술병에 대고 연락선 발동소리와 뱃고동 소리를 흉내내곤 했지.
179쪽:
    그가 바지춤을 끄르고 오줌을 누기 시작했는데 바람에 날린 오줌발이 바짓가랑이를 적셨다.
    저거 봐라, 망령든 노인네두 아니구.
    인호는 바람을 향하여 두 팔을 벌리고 심호흡을 깊숙이 하는 것처럼 보이더니 머리를 쳐들고 외치기 시작했다.
    나는 바다 바다 그리고 마그네슘이다!
252쪽:
    눈에 보이는 것만을 숭배하는 자는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오로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에만 빠져있는 자는 그보다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게 되리라. 파멸하는 것과 파멸하지 않을 영원한 것, 이 두 길을 더불어 갈 때 그는 파멸하는 것으로써 죽음을 건너고 파멸하지 않을 영원한 것으로써 불멸을 얻으리라.
257쪽:
    쪽방을 한 칸 얻고 거리 모퉁이나 버스 종점이나 동네 시장 어귀에 자리를 잡아 드럼통과 손수레 세내어 군고구마 장수로 나선다. 아니면 돈 좀 더 보태어 포장마차를 하든지. 그것도 아니면 이번처럼 괜찮은 도시 공사판을 만나면 함바에서 겨울을 난다. 살아 있음이란, 그 자체로 생생한 기쁨이다. 대위는 늘 말했다.
    사람은 씨팔...... 누구든지 오늘을 사는 거야.
    거기 시팔은 왜 붙여요?
    내가 물으면 그는 한바탕 웃으며 말했다.
    신나니까...... 그냥 말하면 맨숭맨숭하잖아.
270쪽:
    어라, 저놈 나왔네.
    대위가 중얼거리자 나는 두리번거렸다. 그가 손가락으로 저물어버린 서쪽 하늘을 가리켰다.
    저기...... 개밥바라기 보이지?
    비어 있는 서쪽 하늘에 지고 있는 초승달 옆에 밝은 별 하나가 떠 있었다. 그가 덧붙였다.
    잘 나갈 때는 샛별, 저렇게 우리처럼 쏠리고 몰릴 때면 개밥바라기.
    나는 어쩐지 쓸쓸하고 예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관련 사이트


황석영의 네이버 블로그 : 개밥바라기별의 원작 보기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2009/03/20 00:34 2009/03/20 00:34

Posted on 2009/02/15 17:48
Filed Under 리뷰:Review

"삶의 무거움, 엄숙함...
책을 읽는 내내 가슴 한구석이 무언가로 꽉 막혀 있는 것처럼 답답하다.
인간의 나약함, 자기 자신을 부정, 허무주의 등 자조적인 내용이 책의 전반을 휘어 감는다."

───────────────────────────────────────────────────────
인간실격.사양 - 8점
다자이 오사무 지음, 오유리 옮김/문예출판사

문학
2006년 2월 20일
316쪽
───────────────────────────────────────────────────────
첫 장을 넘겨서 등장하는 작가의 프로필에서부터 다자이 오사무의 암담한 인생사가 느껴진다. 유모의 손에 자라 후에는 숙모에게 맡기고, 열아홉 살에 첫 자살 미수사건을 일으키고, 대학 때 긴자의 술집 여자와 함께 바다에 투신하며... 결국, 이 책을 집필하고 애인과 함께 다마 강 수원지에 투신자살한다. 다자이 오사무란 작가의 일생이 왜 이럴 수밖에 없었는지는 이 책을 읽어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아버지의 권위 의식, 모성 결핍...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현실을 반영하였다고는 하지만, 현시대를 살아가는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생각을 글로써 표현하고 있다.

인간 실격 · 사양의 저자 다자이 오사무(太宰治),
Photo courtesy of Wikipedia Japan

인간실격의 요조에 대해 궁금증이 생겨서 읽게 되었는데, 가끔은 이런 책으로 기존에 미쳐 생각하지 못한 것을 느껴보는 것도 조금은 재미있을지도... 그다지 나의 취향과는 맞지 않아 읽는 동안 거부감이 들었지만...


사양에 등장하는 가즈코의 한탄이 아직도 내 머릿속에 맴돈다...

인상깊은 부분

11쪽:

그 사진에는 비교적 얼굴이 크게 찍혀 있어서, 그 얼굴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는데, 이마는 평범하고, 이마에 잡힌 주름도 평범하고, 눈썹도 평범하고, 눈도 코도 입도 턱도, 아아, 이 얼굴에는 표정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인상이란 게 없다. 특징이 없단 말이다. 예를 들어 내가 이 사진을 본 다음 눈을 감는다. 나는 이미 이 얼굴을 잊었다. 방 벽이나 작은 히바치는 떠오르는데, 그 방에 앉아 있던 주인공의 인상은 까맣게 지워져 아무리 애를 써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림이 되지 않는 얼굴이다. 만화로도,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얼굴이다. 다시 눈을 뜬다. 아하, 이런 얼굴이었나, 라는 탄식이 나올 만한 기쁨조차 느낄 수 없다.

236쪽:

기다림. 아아, 인간의 삶에는 기뻐하고, 화내다가, 슬퍼하고, 증오하는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 있지만, 그래도 그것은 인생의 1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는 감정들이며, 나머지 99퍼센트는 그저 기다리며 사는 것 아닐까요. 행복의 발소리가 복도에 들려오길, 이제나 저제나 두 손 모아 기다리다가, 텅 빔. 아아, 인생이란, 너무 비참해. 누구나 태어나지 말았으면 좋았을 거라 생각하며 사는 이 현실. 그리고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끊임없이 무언가를 기다린다. 너무나 비참해. 태어나길 잘했다고, 아아, 이 목숨을, 인간을, 이 세상을, 진정한 기쁨의 웃음을 웃게 해주세요.

267쪽:

전투, 개시.
만약 내가 '사랑' 때문에, 예수의 이 가르침을 단 한 구절도 빼놓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지킬 것을 맹세한다면, 예수님은 날 꾸짖으실까. 어째서 '사랑'은 나쁘고 '박애'는 좋은 것인지 난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둘은 내게 있어 같은 것이다. 뭔지 모를 애정 때문에, 또 사랑 때문에, 그 슬픔 때문에, 몸과 영혼을 지옥에서 멸하는 자, 아아, 나는 나 자신이야말로, 바로 그런 사람이라 큰 소리로 외치고 싶다.
305쪽:
이 세상 속에 전쟁이란 것, 평화란 것, 무역이란 것, 조합이란 것, 정치라는 것이 있는 건 무엇 때문인지, 요즘 전 알 것 같습니다. ... 여자들이 좋은 아이를 낳기 위해서예요. 난 처음부터 당신의 인격이라든가, 책임감에 기댈 생각은 없었습니다. 나의 한결같았던 모험에 찬 사랑의 성취가 문제였습니다.

요조(Yozoh) - 아침먹고 땡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2009/02/15 17:48 2009/02/15 17:48

Posted on 2009/01/24 01:59
Filed Under 리뷰:Review

"잘 짜인 서구식의 경영철학 및 조직문화의 측면에 대해서 이해한다.
한 팀, 하나의 부서를 운영하는 관리자에게 추천할만한 책.
훌륭한 관리자가 되도록 준비운동을 시켜주는 책."

───────────────────────────────────────────────────────
먼데이 모닝 리더십 8일간의 기적 - 8점
데이비드 코트렐 지음, 송경근 옮김/한언출판사

경제경영
2003년11월1일
181쪽
───────────────────────────────────────────────────────

과장님의 소개로 빌려본 책. 책의 두께가 얇은 편이라 부담없이 읽을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다. 이전에 부장님이 선물해준 같은 장르의 책인 "일본전산 이야기"와 내용 면에서 상당히 대조적이다. 일본식 문화와 서구식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관리자의 생각 차이라고나 할까. "먼데이 모닝 리더십"은 자신의 업무를 스스로 설계해 나갈 수 있는 능동적인 사람이 많이 모인 집단에 유익할 것 같다. 타의에 의해 결정되어 행동하는 것보다 직접 결정하고 실천해 나가는 방식을 더 선호하기 때문에 "일본전산 이야기"보다 더 끌리게 된다.


먼데이 모닝 리더십의 저자 데이비드 코트렐(David Cottrell),
Photo courtesy of CornerStone

직접적인 외침(지시)보다는 간접적인 외침(행동). 책을 보면서 처음에는 이거 뭐 그냥 실천하면 하고 말면 마는 거 아닌가란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점점 읽다 보면 정말로 실천을 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한다. 과장, 부풀림 없이 진실하게 있는 그대로를 예기한다.

훌륭한 관리자는 어느 날 갑자기 자고 일어나 되는 게 아니다. 즉, 높은 경력만 가지고서 관리자로서의 올바른 구실을 할 수는 없다. 후에 어느 조직이나 팀을 이끌어 나가는 기회가 생겼을 경우 관리자로서의 자질을 갖추기 위해 여러가지 생각을 하도록 해준다.



인상깊은 부분

35쪽:

... 어떤 상황에서건 그것에 대응함으로써 그 상황을 제어하는 사람은 자네여야 한다는 것일세.
'책망 blame이라는 단어를 제거해버린다면 자넨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을 것이네."

47쪽:

사람들은 보통 그런 일반적인 이유 때문에 직장을 떠나지 않아. 그들이 떠나는 이유는 그 무엇도 아니라 자신의 상사가 자신들의 필요를 채워주지 못하기 때문이지.
사람들은 회사를 그만두기 전에 먼저 사람을 포기하네.
69쪽:
내 직무는 업무수행 능력이 가장 낮은 직원들의 업무량을 조정해서 잘 적응할 수 있게 함으로써 최저수준을 점점 더 낮추는게 아니라, 슈퍼스타의 행동이 무엇인지를 찾아내 상을 줌으로써 최고수준을 더 높이는 것임.
80쪽:
비행사들은 운항중에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문제를 모의실험해 보고 우발적인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메뉴얼을 만들어 조종석에 비치해 놓는다고 하더군. 그 매뉴얼에는 발생할 만한 모든 문제와 그때마다 취해야 할 행동방법이 기재되어 있다네.
자네도 알다시피, 파일럿들은 위기에 처해서야 결정을 내리지 않네.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그 위기에 처하기 전에 미리 수립해 놓은 계획을 자동적으로 이행하지.
99쪽:
직원 채용에는 333법칙이란 게 있네.
한 직무에 최소한 3명까지 후보를 선발하고, 면접관 3명이 3번에 걸쳐 면접을 하는 것이지. 그러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일세. 명심하게. 자네 임무는 까다롭게 직원을 채용하는 것이야.
136쪽:
팀을 위해 커피를 탈 것. 커피 타기는 아주 간단한 일이다. 직원들은 그런 간단한 일에도 고마워 한다. 이것은 아주 쉬운 양동이 채우기 방법이다.
...
'명예의 전당 wall of fame'을 만들어 그곳에 직원과 그 가족들의 사진을 붙일 것.
...
 전 직원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것. 때때로 직원들 곁에 머물면서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만 해도 자동적으로 그들의 양동이는 채워질 것이다.


관련 사이트


CornerStone Leadership Institute : 미국 텍사스주에 위치한 리더십 컨설턴트
리더십관련 베스트셀러 목록 : 리더십은 곧 사람이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2009/01/24 01:59 2009/01/24 01:59

Posted on 2008/12/05 01:38
Filed Under 리뷰:Review

"인간愛에 대한 끌림... 자극적이지 않은 순수함 그 자체"

───────────────────────────────────────────────────────
끌림 - 10점
이병률 지음/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
2005년7월1일
304쪽
───────────────────────────────────────────────────────

"주변의 소소함에 대한 아름다움, 소중함을 느끼게 한다.

왁자지껄이 아닌 조용하면서도 차분하게
단지 배낭을 하나 메고 홀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만화책처럼 그림이 많이 들어간 책은 스토리를 이미지로 보여줌으로서
자신의 상상력을 절제시키지만
이 책의 사진들을 보면 머릿속에 더욱더 커다란 상상의 그림을 그리게 한다.

처음 읽었을 땐 작가가 왜 이런 글을 썼을까 잘 이해가 안되었지만,
두 번 세 번 읽으면서
아... 그냥 읽으면서 현재의 감정 그대로를 느끼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 여행갈때 가져가고 싶은 것 : 책, MP3, 커다란 여행지도, 커피를 담을 보온병, 愛人


인상깊은 부분

#003: 멕시코 이발사

멕시코의 곤잘레스 할아버지는 기막힌 이발사였어. 60대의 할아버지였는데 그 손길, 있잖아. 일개 머리통에 불과한 것을 대하는 자세가 예술적이었어. 뭐랄까, 배려가 넘치면서, 정확하고, 심지어 부드럽기까지 했는데 중요한 건 이 모든 걸 전혀 생색내지도 부러 드러내려 하지도 않았다는 거야.
압권은 역시 면도였어. 그는 세 개의 컵을 가져다 나에게 향을 맡게 했는데 비누 거품을 만드는 그 통엔 각각 향이 다른 비누가 담겨 있었거든. 그중에서 맘에 드는 걸 고르게 하는 거야. 이 정도면 이 할아버지가 얼마나 프로인지를 알 수 있겠지. 물론 머리 감길 때 역시 손님이 선택한 향비누로 머릴 감겨주더라고. 난 적어도 남을 위한 배려가 그 정도는 돼야 한다고 생각해. 한 가지 비누만으로 모든 손님의 머릴 감기고 면도를 해주는 것도 뭐 나쁜 일이긴 할까마는 왠지 존중받는 느낌이잖아.

#009: 탱고

내가 자꾸 너의 발을 밟아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두 손을 들어 보였더니 강사는 벽에 붙어놓은 사진 한 장을 가르킨다. 알 파치노가 주연한 영화 "여인의 향기" 포스터였는데 거기엔 이렇게 써 있다.
"잘못하면 스텝이 엉키죠. 하지만 그대로 추면 돼요. 스텝이 엉키면 그게 바로 탱고지요."
...
춤을 추는 두 사람은 잔잔한 호수를 걷는 새들처럼 부드럽고 날렵하다. 나는 순간 탱고의 의식 앞에서 그런 생각을 한다. 조금이라도 서로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절대 출 수 없는 춤. 저런 춤을 추는데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순간, 벽에 붙은 포스터의 글씨가 이렇게 읽히기 시작한다.
"사랑을 하면 마음이 엉키죠. 하지만 그대로 놔두면 돼요. 마음이 엉키면 그게 바로 사랑이죠."
#020: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을, 아니 다시 태어나야 할  - 삶과 죽음의 냄새가 난다, 베니스
아무것도 가진게 없다고 생각하지 말자.
가진 게 없어 불행하다고 믿거나 그러지 말자.
문밖에 길들이 다 당신 것이다.
당신은 당신이 주인이었던 많은 것들을 모른 척하지는 않았던가.
#022: 끌림
파리의 어느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청년에게 직업을 물은 적이 있다.
청년은 대답하기를, 자신의 직업은 파리를 여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파리 토박이였음에도 불구하고
파리를 여행하는 게 일이라고 서슴없이 말했다.
...
몽마르트르 언덕 꼭대기에 올라 파리를 향해
'사랑한다'고 외친 적은 몇 번이던가.
파리의 수많은 장소와 거리,
또는 건물들은 정말 수많은 표정을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032: 왜 이럴까
내 인생은 왜 이럴까, 라고 탓하지 마세요.
인생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나는 왜 이럴까......"라고 늘, 자기 자신한테 트집을 잡는 데,
문제는 있는 거에요.
#039: 좋아해
기차역이나 기차 안에서 만난 사람들을 기차가 떠남으로 해서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인연을 좋아해. 그 당장은 싫고 쓸쓸하지만 그 쓸쓸함이 여행에 스며드는 걸 좋아해.
#045: 영국인 택시 드라이버
거의 걸인의 행색에 가까울 정도여서 목적지까지 가는 내내 슬며시 후회를 하게 됐단다.
"어쩌면 택시비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 생길지도 모르겠구나."
근데 택시에서 내릴 때가 됐는데
두 배가 훨씬 넘는 택시비를 내더란다.
집에 들어가다가 맥주라도 사 마시라며......
오늘, 안 좋은 일이 있어서
남한테 좀 베풀고 싶은 거니까 받으라고......
...
상대를 일방적으로 생각하지 않기 위한 방법은,
완전히 이해함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049: 뭔가를 그곳에 두고 왔다
소중한 누군가를 그곳에 두고 왔다든가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가 그곳에 남아 있다면
언제건 다시 그곳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물론 그 사람을 데려올 수 있을지 그건 장담 못하겠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그곳까지 날아갈 수 있을 거란 생각.
아마 나만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을 거란 생각.
#058: 그때 내가 본 것을 생각하면 나는 눈이 맵다
여행은, 120점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곳'을 찾아내는 일이며
언젠가 그곳을 꼭 한 번만이라도 다시 밟을 수 있으리란 기대를 키우는 일이며 만에 하나, 그렇게 되지 못한다 해도 그때 그 기억만으로 눈이 매워지는 일이다.
#063: 당신이 머물고 싶은 만큼
불심 하나만으로, 오체투지로 몇 개월씩 걸려 조캉 사원으로 향하는 사람들, 일을 하다가도 오며 가며 사원에 들러 공을 들이는 사람들. 길에서 마주치는 어린 승려들의 장난기 섞인 시선에 발길을 늦추고, 동네 여기저기서 밀려나오는 향 연기에 마음을 빼앗기다 보면 모든 세상의 길이 한 겹이 아니라는 걸 알게도 된다.
그런 그들 가슴은 평생 가도 울 일이 없지 싶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종교적인 민족인 까닭이다. 그들은 지상의 지붕 위에 올라서서 먼 곳을 보며 살아가고 있다. 그 먼 곳에 신비에 가까울 정도의 현실이 꿈틀거리고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아마, 살아가는 일보다는 우주 중심을 향해 겸허해지기 위해 고개 속이는 일이 먼저라고 믿으며 사는지도......
#070: 포도나무 선물
단지 여인의 아름다움에 홀려 돈도 받지 않고
거저 포도를 주었다면
또다시 그 여인을 만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또 포도나무까지 돈도 안 받고 선물했다면
여인은 굳이 이곳에 포도를 따러 오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무례하지만 돈을 받음으로써 그녀가 그곳에 와야 하는 이유까지도 선물했던 겁니다.


알 파치노 주연의 영화 "여인의 향기", Photo courtesy of BFI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2008/12/05 01:38 2008/12/05 01:38

Posted on 2008/11/19 01:10
Filed Under 리뷰:Review

"심리학적으로 해석하는 추리소설"

───────────────────────────────────────────────────────
살인의 해석 - 8점
제드 러벤펠드 지음, 박현주 옮김/비채

문학
2007년2월12일
555쪽
───────────────────────────────────────────────────────

"환자를 치료하려온 정신분석학자가
범인을 추적하는게 다소 비현실적이다.

환자인 액튼 양과 정신분석학자인 영거의 관계,
끝까지 사건을 해결하려는 개성있는 캐릭터 리틀모어의 등장으로
이야기는 재미있게 전개된다.

챕터와 챕터 사이에 스토리 전개의 핵을 끊어
독자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미국식 스토리 전개는
책을 읽는동안 지루함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1909년도의 미국의 시대상, 현실에 대해서도 조금은 이해를 하게 된다."



인상깊은 부분

44쪽:

"의자나 뭐 그런 거요."
"의자?" 검시관이 되풀이했다.
"그럴 수 있잖아요."
"여자를 채찍으로 때리려고 의자 위에 올라가는 남자는 없네. 형사."
"어째서요?"
"그러면 웃기잖아. 떨어질지도 모르고."
"뭔가 붙잡고 있으면 안 떨어질걸요. 뭐 램프라거나, 모자걸이라거나."
"모자걸이? 범인이 뭐 하러 그런 짓을 했겠나?"
"키를 더 커 보이게 하기 위해서죠."
"자네 살인 사건을 몇 건이나 수사했지?"
"이게 처음인데요." 리틀모어는 흥분을 감추지도 않았다. "형사로 서는요."
150쪽:
    "말을 놔줘요!" 누군가 소리쳤다. 분노와 고통에 찬 소녀의 목소리였다. 액튼 양이었다. 그녀는 군중을 따라 42번가로 걸어갔고, 지금은 사람들 맨 앞에 나와 있었다. 영거는 액튼 양 바로 옆에 서 있었고, 리틀모어는 몇 줄 뒤에 있었다. 여자가 다시 외쳤다. "말을 내려줘요. 누구 저 사람 좀 말려줘요!"
    "올려." 밴월이 명령했다. 그는 소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는 한순간 소녀를 돌아보았다. 그러고 나서 다시 말에게 주의를 돌렸다. "더 높이."
    크레인 기사는 명령대로 말을 더 높이 올렸다. 땅에서부터 6미터, 9미터, 12미터 높이까지. 철학자들은 동물이 인간에 견줄 만한 감정을 느끼는지 알 수 없다고 했지만, 누구든 말의 눈에 어린 순수한 공포를 보았다면 그 사실을 의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224쪽:
    "오늘 아침에 액튼 양이 거리에서 받은 경고장입니다." 내가 말했다. "밴월 씨도 잘 알고 있겠죠. 당신이 썼으니까요." 다들 너무 놀라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시장님, 리틀모어 형사, 이 사람이 바로 우리가 찾던 범인입니다. 액튼 양은 사람들이 들어오기 바로 전에 공격 사건을 기억해냈습니다. 즉시 이 사람을 체포해주기를 요청합니다."
    "네까짓 게 감히?" 밴월이 말했다.
    "이게...... 이 사람 누구에요?" 밀드레드 액튼이 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어디서 온 사람이에요?"
    "영거 박사." 맥클레런 시장이 말했다. "무고죄가 중죄라는 걸 모르나보군요. 어서 철회하시오. 액튼 양이 그렇게 말했다면 기억이 속인거요."
318쪽:
    "다 끝났네." 휴겔이 힘없이 말했다. 그의 얼굴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 여자애는 정신병원에 보내야겠군."
    "잠깐만요, 휴겔 씨. 이 얘기 좀 들어보세요." 리틀모어는 검시관에게 넥타이핀을 발견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휴겔은 내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했다. "너무 사소해. 너무 늦었다고." 검시관은 씁쓸히 말했다. 그는 넌더리가 나는지 툴툴거렸다. "그 여자가 한 말을 그대로 믿었지 뭔가. 그 애를 정신병원에 보내야 해. 내 말 알아듣겠나?"
    "검시관님께선 그 여자가 미쳤다고 생각하시나봐요."
    검시관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축하하네. 형사. 추리가 면도날처럼 날카롭군. 리버포드, 액튼 사건은 이제 종결이네. 시장에게 알려. 난 그 양반한테 입도 벙긋 안 할 테니까."
356쪽:
    "도대체 뭐지?" 프로이트가 말했다.
    "저 소리를 알겠군요." 융이 말했다. 그는 승리를 확신하는 듯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전에도 저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박사님의 증거가 저기 있군요! 저게 바로 촉매를 통한 외면화입니다."
    "뭐라고?"
    "심령 속에 흐르는 기가 외부 사물을 통해 나타나는 현상이죠."
    "융, 제발 그만하게." 프로이트가 말했다. "내가 듣기에는 총소리 같던데."
    "잘못 아신 겁니다. 그럼 증명하기 위해서 다시 한 번 일으켜보죠. 지금 이 순간!"
    이 놀라운 말을 융이 뱉어낸 순간, 신음 소리가 다시 시작되었다. 바로 이전과 똑같은 식으로 소리가 점점 참을 수 없을 만큼 커지더니, 엄청난 폭음을 내며 폭발했다.
499쪽:
    노라는 이해했다. 그녀는 윗몸을 돌려 내게 등을 맡겼다. 의사에게 처음으로 진료를 받았던 바로 그 방이었다. 나는 소파에 등을 대고 누운 채 한 손을 뻗었다. 배를 움켜쥔 손이 아닌 깨끗한 손이었다. 나는 그 손으로 노라의 드레스 단추를 풀었다. 옷이 열리자 코르셋 끈을 풀어 작은 구멍들을 양쪽으로 벌렸다. 대각선으로 얼기설기 얽힌 끈 안쪽으로 노라의 우아한 어깨뼈가 드러났다. 아물어가고 있는 찢어진 상처들이 몇 개 보였다. 나는 하나를 만져보았다. 노라는 비명을 질렀지만 곧 소리를 죽였다.
    "됐어요" 나는 소파에서 일어섰다. "그걸로 마무리됐습니다. 이제 경찰을 불러서 내가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줘요. 그럴 수 있죠?"
    노라는 멍한 채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죽을 거라고 하셨잖아요."
    "그럴 겁니다. 언젠가는. 하지만 벼룩에 뜯긴 이 정도 상처로는 어림도 없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살인의 해석"의 또 다른 원서 표지, Photo courtesy of Daum Book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2008/11/19 01:10 2008/11/19 01:10

About

by 외계고양이

Counter

· Total
: 82629
· Today
: 24
· Yesterday
: 53